《아직 그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회화와 가구라는 서로 다른 범주의 사물이 공간 안에서 어떤 위치를 점유하는지와 관람자의 신체와 시선을 어떻게 조직하는지에서 출발한다. 이 전시에서 가구와 회화는 각자의 속성을 유지한 채 통상적으로 부여받아온 역할을 조금씩 벗어난다. 가구는 여전히 사용할 수 있는 구조를 지니지만 전시장 안에서는 그 사용이 유예되고, 회화는 바라보는 이미지로 남으면서도 공간을 나누고 차폐하며 관람자의 이동과 거리를 조정하는 구조로 작동한다. 하나는 기능을 가진 채 관조의 대상이 되고, 다른 하나는 관조의 대상인 채 공간적 효력을 갖는다.
이때 비어 있는 의자와 선반, 작품 뒤편의 공간과 사물 사이의 간격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다. 그곳에는 아직 행위와 신체가 잠재되어 있다. 누군가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지만, 동시에 그 사람이 머물 위치와 자세, 시선의 방향을 미리 규정한다. 관람자는 작품을 바라보는 주체이면서 작품의 배치에 따라 움직임과 위치를 조정받는 대상이 되고, 주인과 손님,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위치 사이를 오간다.
전시는 이러한 모순사이를 산책하듯 거닐게 한다. 사용과 관조, 환대와 권위, 주체와 사물 사이의 경계가 일시 중단된 상태를 유지한 채로 사물들은 몸을 위해 존재하면서도 몸을 통제하고, 공간들은 비어 있으면서도 특정한 관계를 요구하는 순간을 드러낸다. <A Place Must Still Be Left ( )>라는 제목의 빈 괄호처럼, 이 전시의 자리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 아니라 아직이란 가능성과 보이지 않는 규칙을 선보인다.
2026.10.14 — 2026.11.01
전시소개를 준비 중입니다.
이 전시는 회화와 가구의 접점을 탐구하는 전시가 아니라 다른 범주의 두 사물이 공간 안에서 점유하는 위치와 관람자의 신체와 시선을 조직하는 방식을 고민한다. 전시에서는 사물이 통상적으로 부여받아온 역할에서 벗어나는 일시적 순간을 회화와 가구의 영역에서 주목한다. 가구는 사용과 쓰임의 전제에서 벗어나 관조로 이동하며, 회화는 관조를 전제로 제시되지만 전시에서는 단순히 바라보는 대상에 머물지 않고 공간을 분할하거나 차폐하고, 다른 사물과 신체의 위치를 결정하는 구조로 동시에 기능한다. 가구는 쓸모를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진 채로 관조의 대상이 되고, 회화는 관조의 대상인 채로 공간 속에서 기능적 효력을 행사하게 된다. 두 작업은 상대의 영역으로 교차하고 이동은 이중적 상태를 지속한다.
슈퍼포지션의 작업은 전시 속에서 기능을 수행하지 않아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전시장에 놓이는 행위는 사용의 가능성은 실행으로부터 유예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앉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앉지 못하고, 만질 수 있을 것 같지만 접촉하지 않으며, 무언가를 놓거나 올려 놓을 수 있을 것 같은 면을 비어있는 채 바라보아야 한다. 가구의 기능은 제거되기 보다 오직 가능성으로, 희망으로 응축된다. 사용하지 않는 상태는 행위적으로 볼 때 실행 직전에 정지된 상태이다. 가구는 여전히 사용 가능한 형태와 비례를 통해 관람자에 실질적인 신체적 반응을 은연히 유도한다. 관람자는 사용에 대한 기대와 충동, 금지 사이에서 가구를 하나의 완결된 조형물로 바라보는 것과 사물의 표면과 구조를 보며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오가게 된다. 기능은 사라지는 대신 지연되고, 지연 속에서 가구는 실용적 대상과 관조적 대상 사이에 머물게 된다. 이러한 정지는 역설적이게도 사용을 적극적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기제가 된다.
무수민의 작업은 이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회화는 물론 이미지로서 제시되지만, 공간에서 구체적인 물리적 관계로 나아가고 있다. 화면은 벽에 부착된 평면이기도 하지만, 전면과 후면을 발생시키는 반입체적 평면 또는 경계가 될수도 있다. 서있는 상태로는 관람자의 이동적 동선과 방향을 결정짓는 장애물이 되기도 하고, 어떤 회화는 다른 사물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화면의 비율과 높이, 펼쳐지는 방향은 이미지가 관조의 상황과 동시에 신체가 공간 안에서 위치를 갖게하는 상황을 구성한다.
이때 회화가 획득하는 기능은 실용성은 아니며, 회화는 공간속에서 사물과 신체 사이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기 위해 기능한다. 시선을 차단하거나, 동시에 다른 방향을 보게 하고, 몸을 멈추게 하거나 우회하도록 만들며, 하나의 표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뒤편의 존재를 의식하게 한다. 회화는 중립적인 배경에서도 벗어나, 관람자가 어디에 서야하는지, 어느정도의 거리를 형성해야 하는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나중에 발견하게 되는지를 이미 결정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회화의 기능은 보다 효력행사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특정한 행동을 필수적으로 강제하진 않지만, 가능한 움직임과 시선의 범위를 미리 설정한다.
가구는 접근과 접촉을 요청하면서 이를 유예시키고, 회화는 거리를 요구하면서도 신체를 움직이게 한다. 이러한 상반된 명령은 관람자의 몸을 계속해서 불안정한 상태에 둔다. 관람자는 사용하는 주체가 되지 못한 채 사용 가능성을 의식하고, 작품을 바라보는 주체인 동시에 작품의 배치에 의해 조정되는 대상이 된다.
이 관계는 보다 환대와 권위의 문제로 이어진다. 환대는 타인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개방의 행위이지만, 그 공간 안에서 타인의 위치를 정하는 통제의 형식이기도 하다. 권위는 반드시 거대하거나 위압적이지 않다. 그것은 누가 앉을 수 있는지, 무엇을 만질 수 있는지, 어느 위치에서 전체를 볼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비어있는 의자는 누구에게나 열린 자리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앉을 사람이 누가 될지를 제한하고 있을 수 있다. 아무도 앉아 있지 않지만 누군가를 위해 마련된 것처럼 보이는 자리,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지만 어떤 소유물을 전제하는 선반, 아무도 서 있지 않지만 특정한 인물의 후면을 구성하는 듯한 회화는 때로 부재한 주체를 호출하고자 한다.
이 주체는 반드시 구체적인 인물로 제시되지 않는다. 다만 사물의 배치와 방향, 높이와 간격을 통해 하나의 위치로 모인다. 어떤 사물들은 특정한 중심점을 향하고, 어떤 화면은 보이지 않는 인물의 배경처럼 놓이며, 어떤 가구는 실제로 사용되지 않으면서도 누군가가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암시한다. 따라서 주인의 자리는 사람에 의해 먼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사물들의 관계에 의해 사전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사물은 주인의 취향과 지위를 표현하는 수동적인 소유물에서, 주인이라는 위치 자체를 이미 만들어내는 능동적인 장치가 된다. 사용되지 않는 가구는 기능적 가치가 정지된 자리에서 더 강한 상징적 효력을 획득하고, 회화는 이미지로서의 의미를 넘어 공간의 질서에 직접적으로 개입한다. 그러나 이 전시에서 사물이 기능에서 기호로, 혹은 기호에서 기능으로 완전히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두 영역은 지속적으로 유예될 뿐이다. 결코 회화의 이미지는 기능에 의해 대체되지 않는다. 이번 전시를 통한 두 작업의 긴장은 이러한 불완전한 이동에서 발생한다. 사물은 한 가지 체계에 안정적으로 정착하지 않고, 기능적 대상과 상징적 대상, 사용의 도구와 관조의 이미지 사이를 진동하고 있다.
이 전시에서 사물은 중립적인 배경도,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행위를 가능하게 하면서 제한하고, 타인을 환대하면서 특정한 위치를 부여하며, 부재한 주체를 대신하면서 그 주체의 권위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드러낸다. 사물의 표면 자체는 관람자를 향하고 있지만, 그 표면이 만들어내는 지점들은 보이지 않는 중심을 향해 수렴한다. 전시 속 두 작업은 관조와 사용, 환대와 권위, 주체와 사물 사이의 경계가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모습을 만든다. 이중적 중립성은 바로 이 중단된 경계에서 발현된다. 그것은 서로 다른 것들이 이해하거나 통합된 상태가 아니라 상반된 속성이 동시에 유효한 상태이다. 사물은 사용되지 않지만 무용하지 않고, 기능하지만 도구로 환원되지 않는다. 몸을 위해 존재하지만 몸을 통제하며, 손님을 향해 열려 있지만 주인의 위치를 강화한다. 전시는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지 않은 채 공간 안에 유지한다. 그리고 관람자는 그 사이를 이동하며 자신의 몸과 시선, 사물과 맺는 관계를 매 순간 재배치되는 상황속에서 다시 인식하도록 만든다.
서문 | 16아카이브 김환
@16akaiv @hwankm